공무원 한국사 빈출
한국어 · 45장
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핵심 사건·제도·인물·조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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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조법(범금 8조)
고조선의 법으로, 현재 3개 조항만 전한다. 살인·상해·절도를 다스려 당시 사회가 생명·노동력·사유재산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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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만조선
기원전 194년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세운 정권. 철기 문화를 본격 수용하고 중계무역으로 성장했으나 기원전 108년 한 무제에게 멸망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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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고·동맹·무천
부여(영고, 12월)·고구려(동맹, 10월)·동예(무천, 10월)의 제천행사. 추수감사제 성격의 부족 공동체 행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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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개토대왕릉비
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. 고구려의 영토 확장과 신라 구원 등 정복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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칠지도
백제가 왜에 하사(혹은 전달)한 철제 칼. 백제와 왜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로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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골품제
신라의 신분제도. 골(성골·진골)과 두품으로 나누어 관직 승진·집·수레 등 일상생활까지 규제했다. 6두품은 승진에 한계가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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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랑도
진흥왕 때 국가적 조직으로 정비된 신라의 청소년 수양 단체. 원광의 세속오계를 행동 규범으로 삼아 인재를 양성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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북한산비(진흥왕순수비)
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세운 순수비. 김정희가 금석학 연구로 진흥왕순수비임을 고증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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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서삼품과
통일신라 원성왕 때(788년) 시행된 관리 선발 제도. 유교 경전 독해 능력을 상·중·하로 평가했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한계가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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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보고와 청해진
통일신라 흥덕왕 때(828년)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한 해상 군사·무역 기지. 해적을 소탕하고 동아시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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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(해동성국)
698년 대조영이 세운 나라.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했고,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'해동성국'으로 불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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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비안검법
고려 광종 때(956년) 시행된 법.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양인으로 풀어 호족의 경제·군사 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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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제 도입(고려)
광종이 958년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로 처음 실시한 관리 선발 시험. 능력 중심 인재 등용으로 신구 세력 교체를 꾀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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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희의 외교 담판
993년 거란 1차 침입 때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획득했다. 송과 단교하고 거란과 교류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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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동 6주
994년 고려가 압록강 동쪽에 확보한 6개 지역. 서희의 담판으로 얻었으며 거란·여진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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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
1135년 묘청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·금국 정벌을 주장하며 일으킨 반란. 김부식의 관군에게 진압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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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신정변
1170년 정중부·이의방 등이 문신 우대에 반발해 일으킨 정변. 이후 약 100년간 무신 집권기가 이어졌고 최씨 정권이 그 정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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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별초의 항쟁
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자 배중손 등이 이끈 삼별초가 강화도·진도·제주도로 옮겨가며 1270~1273년 대몽 항쟁을 이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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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지심체요절
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(最古)의 금속활자 인쇄본.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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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전법
고려 말 1391년 신진사대부가 시행한 토지 제도. 전·현직 관리에게 경기 지역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해 조선 건국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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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국대전
조선의 기본 법전. 세조 때 편찬에 착수해 성종 때(1485년) 완성·반포되었다. 유교적 통치 질서의 근간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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훈민정음
1443년 세종이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우리 고유 문자. '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'라는 뜻으로 해례본에 창제 원리가 설명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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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군 6진
세종 때 최윤덕(4군)과 김종서(6진)가 여진을 몰아내고 개척한 북방 영토. 압록강~두만강에 이르는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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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화(士禍)
조선 전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사림이 화를 입은 사건. 무오·갑자·기묘·을사 4대 사화가 대표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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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진왜란
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. 이순신의 수군과 의병, 명의 원군으로 막아냈고 1598년 종결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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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법
공납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토지 결수에 따라 쌀·베·동전으로 납부하게 한 제도. 광해군 때(1608년)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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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조의 탕평책·균역법
영조는 붕당 간 균형을 위한 탕평책을 펴고, 1750년 균역법으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 부담을 덜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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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조와 규장각
정조는 즉위 후 규장각을 설치해 인재를 양성하고 개혁을 추진했으며, 수원 화성을 건설하고 신해통공으로 상업을 진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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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학
조선 후기 현실 문제 해결을 추구한 학문. 유형원·이익·정약용의 중농학파와 박지원·박제가의 중상학파(북학파)로 나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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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화도 조약
1876년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·불평등 조약. 부산 등 3개 항구 개항, 해안 측량권·치외법권을 인정해 침략의 발판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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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오군란
1882년 구식 군대가 신식 군대(별기군)와의 차별 대우에 반발해 일으킨 봉기.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며 청의 간섭이 심화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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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신정변
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일으킨 정변. 14개조 개혁 정강을 발표했으나 청군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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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학 농민 운동
1894년 전봉준 등이 주도한 반봉건·반외세 농민 운동. 집강소를 통한 폐정개혁을 시도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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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오개혁
1894년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추진된 근대적 개혁. 신분제·과거제 폐지, 도량형 통일 등 봉건적 제도를 혁파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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을미사변·을미개혁
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고, 이후 단발령 시행 등 을미개혁이 추진되어 의병이 일어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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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제국과 광무개혁
1897년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했다. '구본신참'의 원칙 아래 광무개혁을 추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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을사늑약
1905년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조약.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했다.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부당함을 알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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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채 보상 운동
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경제적 국권 회복 운동.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국민 모금으로 갚자는 운동으로 전국에 확산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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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·1 운동
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비폭력 만세 운동.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,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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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 임시정부
1919년 3·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민주공화제 정부. 연통제·교통국을 운영하고 독립운동을 총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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봉오동·청산리 대첩
1920년 만주에서 거둔 독립군의 승리. 봉오동에서 홍범도, 청산리에서 김좌진·홍범도 부대가 일본군을 크게 격파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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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산 장려 운동
1920년대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시작한 민족 경제 자립 운동. '내 살림 내 것으로' 구호로 국산품 애용을 장려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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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간회
1927년 결성된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.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연합한 최대 규모의 합법적 항일 단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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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인 애국단
1931년 김구가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. 이봉창의 일왕 폭탄 투척,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가 대표적 활동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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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·10 총선거와 제헌 헌법
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보통선거가 실시되었고, 이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가 헌법을 제정해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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